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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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가지록(vulpes)


수는 어려서부터 불행의 끝을 달리는 인물입니다.

황제 공은 한 번 잤던 수의 몸에 반해 그를 계속 찾아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 수의 주변을 파멸시키게 되고 

이어지는 관계 역시 매번 강간으로 이어지다 보니 

수는 그를 볼 때마다 괴로움에 치를 떠는데...

 

 

기본 이야기 구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승자에 의해 (왜곡되어) 기록되는 역사 얘기거든요. 

빽 없는 수는 있는 일 없는 일 모두 뒤집어 쓴 채

처맞아 죽어 싼 가해자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됩니다.

 

실상은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주변에 휘둘리기만 한, 불행의 끝을 달리던 피해자였죠.

저렇게 막가는 공을 결국 용서까지 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진정한 고구마의 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강간 피해자가 자길 강간한 놈이랑 잘 되는 이야기라고나.)

 

여기에는 수의 성격이 한몫을 하는데...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데다

기가 약해서 주변에서 후려치기 좋은 타입이고

무슨 일을 당해도 반발하지 않고 자기 안으로 다 끌어안아 버리거든요.

앞에서 약한 척하면 바로 넘어갈 만큼 마음도 약하고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 계속 휘말리기만 합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주변의 감정에, 판단에, 상황에 그냥 떠밀리기만 합니다.

 

이야기상으로는 인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극단적인 상황만 끊임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언뜻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란란은 자기 손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었죠.

 

이건 애초에 가지고 있는 마인드의 문제도 있는데...

보고 있으면 그냥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로 보여요.

애정결핍도 상당해서 그걸 외부에 대한 동정심이나

주변인에 대한 애착으로 돌려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수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확실히 첫번째 아내 같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마구 퍼부어줄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람 말이죠.

일종의 대리 어머니 같은?

 

보통 벨에서 애정결핍 수가 나오면 이런 역은 공이 담당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공은 (감정적으로) 어린애라서 그걸 제대로 주질 못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사랑이 아니라 '정'에 그쳐 버리는 거고요.

 

이게 언제 쓰여진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꽤 옛날에 쓰여진 것이 아닐까 싶었고...

빨간약을 안 먹었다면 모를까, 먹고 나서 보자니 좀 깝깝했습니다...O<-<

(멋모르는 순진한 여자애들이 저런 마인드로 살다가 

불쌍하다고 똥차 끌어안고 인생 같이 망하는겨... 싶었달까ㅜㅜ)

 

본편의 베드씬을 보면 죄다 강간이고 수는 몸을 굳힌 채 고통만 느끼고 있어서

아니 제대로 반응도 못할 텐데 강간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라면

넣자마자 천국을 느낀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 보기도 하고(...)

(그러나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벨적 허용이 붕괴됨...;;)

 

너무 인위적으로 불행의 불행으로만 굴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사실 없진 않았어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걸 수의 환경으로 정당화시키는 느낌도 좀 들어서.

 

하지만 이 소설 자체가 수의 불행에 대한 보고서고

주제가 애초에 그건데 뭐 어떠리 싶기도...ㅇㅇ;;

 

공의 수에 대한 집착이 몸뿐이었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거 말고도 좀 더 좋은 매력포인트를 어필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공과 수의 타협안에 가까운 안착...도 나쁘진 않았지만

좀 더 인간적인 성장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네요.

(외전을 과연 성장으로 볼 수 있는가는 의견차가 좀 있을 듯...)

 

길게 떠들었지만

가독성도 좋았고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역사서를 뒤집는 아이디어도, 던져둔 복선들을 하나하나 회수하는 것도

좋았고요. 군데군데 비어있는 부분이 느껴지긴 했지만

'옛날 이야기'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장르적 장점도 있었죠.

 

다음에는 (이 작가님이 쓴) 서로의 애정이 맞닿는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이었습니다.

 

 

별점을 준다면 별 세 개. ★★★ (★ 5개 만점)

 

 

 

  • 순한차 2016.12.16 04:54
    호가지록!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피폐물 잘 못 읽는데..ㅠㅠ 맘 짠하면서도 읽었네요. 필력이 좋으셔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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